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리 S. 트루먼 (문단 편집) === 대통령 제2임기(1949.1.~1953.1.) === >'''나는 [[더글러스 맥아더|그 양반]]이 대통령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아서 잘랐다. 그 양반이 멍청한 개새끼라서 자른 게 아니다. 물론 그렇긴 했는데, 그게 불법은 아니니까. 만약 그게 불법이었으면 장군들의 절반 내지 3/4 정도는 다 감옥에 있어야 할 것이다.''' >I fired him because he wouldn't respect the authority of the president. I didn't fire him because he was a [[개새끼|dumb son of a bitch]]. Although he was, but that’s not against the laws for generals. If it was, half to three-quarters of them would be in jail. >---- >- 1973년 12월 3일 [[타임(주간지)|타임지]] 기사, 트루먼이 1960년에 했다는 발언을 인용하며 트루먼의 대통령 제2임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외교적 사건은 역시 [[6.25 전쟁]]일 것이다. 이때 벌어진 [[더글러스 맥아더]] [[미군|미 육군]] [[원수(계급)|원수]]와의 마찰 일화도 나름 유명하다. 애시당초 둘은 성격이나 정치사상부터가 달랐는데, 거기에 트루먼은 군인인데 쇼맨십이 강한 맥아더의 행동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대통령 말 안 듣고 혼자 설쳐대는 맥아더를 보고 누가 대통령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을 정도니... 그래도 군사적 능력을 인정해서 딱히 제재를 가하려 들지는 않았다. 세간에 알려진 이야기와는 다르게 맥아더 장군과 극동사령부는 핵무기 신중론였고 핵무기 사용을 고려한건 미본토 군부와 트루먼 대통령이였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18756|관련 기사]] 전쟁 초반부터 워싱턴 군부는 핵사용을 적극 고려했고 트루먼 대통령도 이에 대해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일종의 확전 방지용 뻥카의 목적도 있겠지만 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B-29]] 폭격기 10대를 괌에 배치했고 맥아더 해임 나흘 전엔 아예 괌에 핵무기 전진 배치를 지시했다. 기자들에게 "언제나 핵무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맥아더와 극동 사령부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장의 상황에서는 핵무기의 필요성과 효과가 계속해서 변동되기에 핵무기 사용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고 한국 전쟁이 세계 대전으로 확전되는 상황이 아니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전략도 고려했다. 또 미 육군 작전참모부가 11월 후반 “유엔군 작전 지원을 위한 핵무기 사용 결정에 대비하고, 맥아더에게 핵무기 사용 능력을 부여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실무적인 사용 계획을 준비했다. >맥아더는 한국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상황이 아니라면 핵무기 사용이 필요하지 않다는 전략도 고려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워싱턴에서 이뤄진 핵무기 사용 논의를 바탕으로 실무적인 사용 계획은 준비했다. 1950년 12월 22일에 작성된 미군 문서에 구체적인 논의 과정과 내용이 담겨있다. > >한 달 전인 11월 29일 맥아더는 극동사령부 참모들에게 “지상 작전 지원을 위한 전술 핵무기 사용 관련 보고서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극동사령부는 “핵무기를 한반도에 사용하는 데 장애가 없고, 적에게 결정적 타격이 가능하다”며 “대규모 증원에 대응하려면 핵무기 120개가 필요하고 이를 일본에 비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해임한 결정적인 이유는 위에서 인용된 트루먼의 어록대로 맥아더가 문민통제를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개겼기 때문이다. 1951년 4월 5일,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조셉 윌리엄 마틴 주니어는 트루먼의 유럽 정책과 전쟁 전략을 비판하는 맥아더의 서신을 의회에서 낭독했다. '''이는 민주당 대통령이 임명한 사령관이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의 입을 빌려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공개적으로 항명하는 정치적 스캔들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으로 맥아더의 경력은 끝장났다. 여담으로 미국에서는 6.25 전쟁을 '트루먼의 전쟁(Truman's wa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외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가 트루먼의 두 번째 임기에 발족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